[기고] 몇 년 있으면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는 일죽초등학교 교가는 이렇게 시작된다. “마이산, 노승산이 하늘 높이 떠 있다. 청미천 굽이굽이 살찌는 옥토~” 앞으로 이렇게 바꿔 불러야할지 모른다. “마이산, 물류창고(노승산) 하늘 높이 떠 있다. 청미천 굽이굽이 살찌는 물류창고(옥토)~”
▲ 이종은 청미천환경실천연합 상임대표
물류창고로 재미를 붙인 안성시청의 서슬 퍼런 칼날 앞에 지역의 명산이라 불리는 노승산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물류공사 측은 지난 2월 28일부터 물류창고 조성을 위한 길 닦기 공사의 일환으로 지역의 명산인 노승산을 허리부터 가슴까지 잘라냈다. 이어 몇 십 년 된 노송과 참나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나무들이 베어 나갔고 그런 노승산은 일죽 시가지에서 보더라도 제 속살을 훤히 드러내 놓고 있는 실상이다.
노승산 오른쪽 끝자락에 위치한 능국리 국동 부락에 1년 전에 이사 왔다는 한 주민은 마을 앞에서 벌어지는 이런 엄청난 대규모 공사에 대해 “내 눈을 믿지 못하겠다. 어떻게 물류창고 공사를 위해 옛부터 명산이라고 하는 노승산 한 복판을 통째로 파헤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실토했다. 사실 물류창고는 말 그대로 제품을 일정기간 보관하는 창고 역할일 뿐이다. 이러한 창고 공사를 위해 대대손손 노승산의 체온을 느끼며 한 몸으로 살아 온 능국리 네 부락 주민들의 허탈감과 실망감은 앞으로 어떻게 치유되어져야할지 괜한 걱정일까?
업체 측은 지난 2015년 9월 24일 국동 마을회관에서 노승산 물류공사와 관련 환경영향평가 초안 설명회를 가졌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은 환경영향평가 설명회가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고 한다. 설명회와 관련 제대로 된 요약집 하나 주민들 손에 쥐어 준 것 없이 설명회를 강행하다 마을 주민들의 반발로 다시 설명회를 갖기로 했다가 공사를 강행한 업체 측에 주민들이 허를 찔린 실정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은 능국리 분동 입구에 걸린 “주민 의견 묵살하는 노승산 물류공사 중단하라”고 써 붙인 현수막이 이를 대변하다. 작은 공사도 주민들과의 소통을 전제로 이행되는 작금의 실상에서 이런 대단위의 임야를 파괴하면서 진행되는 공사에 대해 제대로 된 공청회도 아닌 초안 설명회로 끝난 물류업체 측의 무성의한 자세는 마을 주민들과의 갈등만 키울 뿐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란 걸 업체 측만 모르는 걸까? 고용창출도 안되고 지역경제에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빈껍데기뿐인 이런 물류창고를 위해 과연 지역의 명산인 노승산을 제물로 바쳐도 되는 걸까? 필자의 생각이지만 과연 누구를 위한 제물인지 능국리 4개 지역 주민들은 물론 일죽면민들이 하나 둘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절체절명의 운명을 맞이하고 있는 노승산의 실정을 감안할 때 그나마 작은 희망의 빛이란 생각이다.
노승산 물류공사는 정말 누구를 위한 공사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노승산을 경계로 같은 경기도 권역에 위치하는 이천시와 안성시가 노승산에 대해 취하고 있는 견해와 시각차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깊다. 이천시 권역의 노승산은 10년 전부터 이천시가 주민들을 위한 산책로 조성은 기본이고 주차 시설과 위락, 편의시설 그리고 각종 산행에 따른 안내 표시판 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주민 친화형 시민문화 체육공원으로 탈바꿈 시켜 주말이면 수도권의 수많은 산악회원들이 즐겨 찾는 지역의 명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에 비해 안성시는 그 흔한 산행 표시판 하나 없이 오늘까지 이어 오다가 돌연 물류창고의 본거지로 활용하려는 눈치 빠른 행보를 보이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잘려버린 수많은 나무들은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노승산이 콘크리트 바닥으로 덮여지기 전, 공사가 중단된다면 자연은 그 위대한 자연 복원력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노승산은 아무 말이 없다. 하지만 지금껏 행한 안성시 행위의 모든 역사를 노승산은 영원토록 기억할 것이라 생각한다. 마을 주민들과의 충분하고도 깊은 소통 없이 일방적, 획일적으로 강행되는 창고 공사는 더 큰 피해만 키울 것이 자명하다.
이를 무시하고 물류창고 공사를 강행한다면 안성시청의 시책 멘트도 지금의 “문화, 예술의 도시, 안성시 입니다”는 “문화, 물류창고(예술)의 도시, 안성시입니다”로 뀌어야 한다. 누구를 위한 물류창고인지 다시 한 번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종은 청미천환경실천연합 상임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