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다이나믹한 국가이다. 도대체 1년 내내 사회적 이슈가 끊이지 않는다. 기자들에게는 취재거리가 천지에 널려 있는 살기 좋은 나라일지 몰라도 서민들은 정신없는 세상살이에 넌더리가 난다.
아버지를 쫓아내고 그 돈으로 아들을 고용하겠다고 당당히 말하는 정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수천만원의 빚을 안고 사회에 나가야 하는 청년들에게 ‘눈을 낮추라’,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는 복장 뒤집어지는 소리만 해대는 정부, 여유가 안 되어 결혼은커녕 연애도 못하는 청년들에게 ‘정부가 미팅을 주선하겠다’고 웃기지도 않은 대책을 자랑스레 발표하는 정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애국심이 부족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노예’를 낳아 기르라고 줄창 잔소리해대는 정부.
청년들은 이러한 나라를 바라보며 ‘헬조선’이란 자조 섞인 명칭을 만들어냈다. 지옥이라는 헬(Hell)에 대한민국을 ‘조선’으로 표기하여 만든 단어인데, 7포세대인 청년들에게는 이 나라 자체가 지옥인가보다. 인터넷에서는 ‘그래도 조선시대에는 왕이 신하들의 상소라도 들었다’며 정부의 불통을 비난하고 있고, 이에 답하는 정부와 한나라당은 ‘청년들이 좌편향 역사교과서로 배워 편협한 역사의식을 갖게 되었다’며 난데없이 역사교과서를 국가가 만들겠다고 나섰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역시 ‘현재의 역사교과서가 잘못되었기에 국정화하겠다’고 여야대표를 불러 호통을 친 것도 모자라 국회에서도 ‘국정교과서’를 역설하셨다. 여기에 화답하며 한나라당의 대표라는 분은 ‘대한민국 역사학자의 90%가 좌파’라고 지적하고, 또 다른 분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고 윽박지른다. 정부 여당이 이런 여론몰이를 해대니 나라 전체가 두 쪽이 나서 서로 물어뜯기에 여념이 없다. 가만히 있던 국민을 생각도 못한 역사교과서를 이유로 둘로 갈라놓았다. 진정 지옥이 따로 없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왜 이 정부는 사사건건 국민을 분열시키려고만 하는가? 멀게는 이명박정부 때의 광우병 파문부터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까지 국민이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꼴을 만들어낸다. 이해가 안 된다. 역사교과서가 뭐라고 역사학자의 90% 이상, 국민의 70% 이상이 반대하는 국정화를 강행하려는 것일까? 일부 언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친일파, 독재자로 지칭되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일까? 내년도 국회의원 총선을 겨냥한 보수층 결집을 노린 것인가? 내 알량한 지식과 상식으로는 우리 대통령님의 심중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미 자신들이 올바른 교과서라고 주장했던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없다는 것, 고등학생들까지 나서서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모습에서 배우는 바가 없는 것일까?
얼마 전 안성의 시민단체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강연회를 주최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이 가장 공감한 부분은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좌파교과서가 있으면, 그들이 얘기하는 ‘올바른’ 교학사 교과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서 학생들이, 국민들이 다양한 시각을 키우고 자신의 생각을 내세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식의 태도는 모두에게 지옥을 보여줄 뿐이다. 또한 이러한 정부를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상당수의 국민들에게는 2015년 대한민국은 ‘헬조선’일 수밖에 없다.
김낙빈(소통과연대 사무국장)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