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사회디자인연구소 이대호 소장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MBN의 윤범기 기자의 축사 내용입니다.

-----윤범기 기자의 축사 “우리 결혼하게 해주세요”-----

안녕하십니까? MBN 윤범기라고 합니다. 사실 대단한 경력도 없고 더구나 종편이 진보진영의 공적처럼 돼 있는 요즘, 저에게 김대호 소장님께서 축사를 부탁하셔서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괜히 누가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됐구요. 하지만 제가 하는 20,30대 청년들의 독서모임에 김대호 소장님이 강연료 한 푼 못드렸는데도 두 번이나 나와주셔서 작은 보은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감히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사실 먹고 살만한 종편 기자가 이 책을 읽고 얼마나 공감을 하고 대단한 감동을 받았길래 축사까지 하겠다고 나섰느냐고 물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문제는 일자리와 공평”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격차 해결이 진보의 핵심 과제가 돼야한다는 소장님의 문제의식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비록 저는 정규직 노동자지만, 저희 쌍둥이 형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 형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요? 저희 형은 대학도 아니고 고등학교 연합고사를 떨어졌습니다. 소장님이 말씀하시는 ‘교육시험 사다리’에서 일찌감치 미끄러진거죠. 참고로 쌍둥이인 저는 서울대를 나왔습니다. 대학원공부까지 했고요. 저희 형이 어떤 인생을 살았을지는 대략 짐작이 가시나요? 중졸이 학력이 될 뻔했던 저희 형은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패스하고 전문대에 갔습니다. 연합고사도 떨어진 사람이 어떻게 검정고시는 패스했냐? 앞자리에 외고 자퇴생이 앉았답니다. -.- 어쨌든 전문대를 겨우 졸업했어도 원래 공부를 잘 못했던 형은 전공을 살리지도 못하고 바로 비정규직 노동시장으로 편입됐습니다. 제가 아는 한 편의점 알바에서 짜장면 배달부, 주유소 총잡이까지 저희 형이 안해본 직종이 없을 겁니다.

지금 저희 형은 우체국에서 야간에 우편물을 분류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2년 이상 근무해서 무기계약직이란 걸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함부로 짤리지 않을 뿐이지 월급은 120만원이랍니다. 저희 형 나이가 저랑 동갑이니까 올해 36살입니다. 저희 형 결혼할 수 있을까요? 3살 위인 큰형도 마찬가집니다. 지방대 공대를 나온 형은 게임유통 협력업체에 계약직으로 들어갔다가 월 60만원씩 주는 극심한 노동착취를 견디지 못하고 나와서 5년이 넘게 변리사 시험 공부만 했습니다. 이제 올해 39살이 됐는데 결혼 못하기는 마찬가집니다.

저희 어머니는 저희 어렸을 때 일찌감치 아버지와 헤어지고 혼자 삼형제를 키우셨습니다. 아무 기술도 없는 여자가 서울에서 아들 셋 키우려니 결국 작은 사업을 시작하신 게 독서실이었습니다. 자영업을 하신거죠. 마침 97년 말에 IMF가 터졌습니다. 임대료 몇 달 밀렸더니 건물 주인이 용역들을 동원해서 독서실 집기를 다 들어내버려습니다. 온 가족이 말 그대로 거리에 나앉았죠. 우여곡절 끝에 젊었을 때 따둔 공인중개사 자격증으로 겨우 부동산 사무실 하나 내셔서 가족들을 다시 모았지만 요즘 같은 부동산 경기에 사무실 유지하는 것도 얼마나 힘들지는 대략 짐작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김대호 소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대한민국이 “비정규직도 살만한 세상”이었다면 저희 형들의 인생은 어땠을까?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도 성공할 수 있는 ‘시장 사다리’가 작동했다면 우리 어머니의 인생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그런데 이런 저희 가족의 이야기는 저 하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IMF 이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진보와 보수의 기득권 세력들이 자기 밥그릇 지키기와 사익 극대화에만 몰두한 사이에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힘 없는 약자들이 살아온 보편적인 이야기일 것입니다.

저는 이거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저희 형제 같은 사람들이 결혼할 수 없는 사회라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습니다. 저출산 고령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인구는 줄어들고, 대한민국이라는 정치 공동체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나라가 망할 것입니다.

김대호 소장님의 “2013년 이후”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진보와 보수 기득권을 내려놓고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플랫폼을 찾아보자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또한 김대호 소장님의 책은 마키아벨리가 로마사논고에서 말한 개혁의 어려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혁으로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은 소수이고 강력하게 조직된 반면, 개혁의 수혜자인 전국민은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진보, 보수 모두의 진영 논리를 거부하는 김대호 소장님의 주장은 실현하기가 정말 어려울 것입니다. 이는 마치 조선왕조의 병폐를 개혁하려고 했던 조광조나 율곡 이이의 시도가 결국 실패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율곡 이이의 십만 양병설도 동인과 서인의 진영 논리 속에서 결국 사장되고 말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는 올해가 대선과 총선이 있는 해라는 점에서 희망을 찾아봅니다. 김대호 소장님의 이 책이 단순히 도서관에 꽂힌 책 한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민주통합당이든 안철수의 제3세력이든 세상을 진정으로 바꾸고자하는 사람들의 바이블이 될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정치한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읽고 토론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비판도 할 수 있고 더 좋은 대안을 내놓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 기반한 토론 자체가 우리 정치권의 지적 수준과 정책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보는 진보를, 보수는 보수를 성찰하는 계기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덕에 올해 말이나 내년 쯤에는 저희 형제들도 늦장가 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김대호 소장님의 건승과 “2013년 이후”가 대박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