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시 의사과와 의회법무팀에 드리는 의견 — 조례의 입법 제정 절차와 관련하여
최근 안성시는 평생교육 관련 조례의 제정을 공표한 바 있습니다. 일찍이 사회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법적 제도적 정비를 도모한 인근 지자체에 비하면 만시지탄이지만, 그 자체 여러모로 뜻 깊은 입법이라고 높이 평가합니다.
본인은 수년전부터 안성시가 채산성 없는 특정 민속 모티브에 집착하여 막대한 예산을 탕진하기 보다 보편적 교육복지를 확대하여 다수 시민의 삶의 질을 제고하는 정책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일환으로, 교과부 평생학습정책과나 한국평생교육원 실무자들과 전화통화하면서 우리 지역이 평생학습 도시로 지정되어 특별지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다각도로 타진해 왔던 본인 입장에서 <평생교육 조례>의 제정은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조례를 발의한 유혜옥 의원께도 사전에 조례 내용을 공유, 검토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두어차례 요청했지만 (입법예고 절차도 없이) 이 조례가 공표된 이후에야 시청 홈페이지에서 확정 공표된 조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게 못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안성시 의사과에 몇 가지 당부 겸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첫째,
안성시 실무자에게 조례제정 사실을 알리는 공지(입법예고)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유를 물으니 의원이 발의하면 시민들에게 공지 않아도 된다는 법적 규정이 있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의원은 시민들의 대표성을 위임받고 있기 때문에 입법 과정에서 공시나 시민공람이 필요없다고 생각했다는 취지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그런 규정이 있을 리 만무하다는 상식적인 판단에서 관련 규정을 확인해 줄 수 있는지를 물었는 바, 그 다음 날 돌아온 회답은 관련 법규를 찾아보았지만 그런 규정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입법예고를 거치지 않은 게 뭐 대수냐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입법예고를 하지 않은 것은 <행정절차법>(제41조, 42조) 및 그 <시행령> 등 법률이 명시하고 있는 규정을 정면으로 위배했을 뿐 아니라, 시민의 권리를 자의적이고 편의적으로 침해한 것입니다. 그런 태도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원칙에서 볼 때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의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각개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보좌하고 행정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의사행정의 그릇된 인식에서 기인한 문제라고 봅니다. 새로이 발의되어 제정, 공표된 조례를 입법예고하지 않은 일을 예사롭지 않게 읽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
더 잘 아실 거로 여기지만, 법(조례)은 인간의 삶을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구속력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다수가 보편적으로 동의하고 기꺼이 따를 수 있는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관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대의와 명분에도 다른 시각과 의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입법예고를 통해 다른 의견과 입장을 수렴하고 조율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환기하고자 합니다.
극단적인 얘기지만, 법에 명시된 규정을 지키지 않은 절차상 하자가 있기 때문에 이 조례는 사실상 효력이 없다고 봅니다. 이런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누군가 적법하지 않은 절차를 문제 삼아 행정소송이라도 제기하면 법을 지키지 않은 안성시가 100% 패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애써 조례를 발의한 의원이나 시민들에게 크게 누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의정을 보좌하고 행정적으로 지원해야 할 의사과가 시민들과 의원들의 고유권한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도 우려합니다. 보편적인 교육복지를 구현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인 <평생교육 조례>를 발의하고 입법화하는 것은 의원 개인에게는 영예스러운 일로, 널리 알리고 홍보해야 할 업적입니다. 본인이 알기로 풀뿌리 민주주의로 일컬어지는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이래 안성시 의회가 5대에 이르지만 이번에 유혜옥 의원이 <평생교육 조례>를 발의하기 이전까지 의원들이 자체 발의하여 입법한 조례가 단 한 건도 없습니다.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법에 따라 이를 공지하는 것은 다양한 의견의 수렴이라는 고유목적 이외에도, 시의원의 활동을 널리 알리는 의미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과가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입법예고를 하지 않은 것은 시민의 알 권리와 시의원의 실적 홍보 권리를 침해한 사안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넷째,
의사과는 시민들의 대표인 시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보좌하고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부서이니만큼 스스로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시의 행정책임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눠보면, 우리가 하는 일에 말이 많다는 투로 거부하는 정서가 감지되는 경우도 여전히 일부 남아 있긴 합니다만,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협치와 소통의 분위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어서 우리 사회가 점진적으로나마 큰 변화를 이루고 있음을 실감하곤 합니다.
의사행정도 시민들에게 좀더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의 대표들이 있는 곳이 오히려 구중심처와 같은 폐쇄성이나, 우리는 예외다는 특권의식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닌지 되새겨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 믿지만, 혹여 의사행정 실무책임자들이 소수 대표자들(의원)만 핸들링하면 그만이라 여겨, 다수 시민은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오해를 자초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의사행정은 시민의 대표들과 늘 가까이 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시민 다수를 상대하는 것보다 소수 의원들을 상대하는 것이 훨씬 더 쉽다는 유혹을 느낄 법도 합니다.
차제에, ‘시민과 시민의 대표자인 의원들의 의회’가 아니라, ‘의사행정 공무원의 의회’가 되지 않게 하려는 적극적이고 가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덧붙여 두고자 합니다.
이상의 의견에 대해 통찰과 혜량을 삼가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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