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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서울시 도봉구의원)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10% 이상이 장애를 가진 인구로 추정될 만큼 장애 인구 수는 급증하고 있다. 그리고 장애원인은 선천적이 아닌 후천적 원인에 의한 경우가 전체의 89.4%에나 이른다고 한다. 이런 통계는 누구나가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며 이는 장애인을 단지 복지 제공의 대상으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 정책은 여전히 선별적 차원의 복지, 동정과 시혜의 시각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이런 현실에서 장애인복지는 장애인단체들의 헌신적인 투쟁을 통해 발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1년부터 시작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 2003년 장애인 교육권 투쟁, 2004년부터 진행된 활동보조인 제도화 투쟁과 장애인 연금법 투쟁,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투쟁, 탈시설 권리 투쟁 등 장애인 단체들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장애인복지 현장에는 장애인 당사자주의와 함께 ‘자립생활’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각 지역사회에서 느리지만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장애인복지 정책도 동정과 시혜에서 권리 중심으로, 공급자 중심의 재활서비스에서 소비자 중심의 자립생활지원 서비스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장애인이 스스로 삶의 선택권을 가지고 결정하며 지역사회 일원으로서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과 제도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그것이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지원조례’ 제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지원조례’는 현재 전국적으로 약 28곳에서 제정되었으며 서울시를 비롯 강남구,동작구,서초구,성동구,중구,양천구,관악구 7개 자치구에서 이미 제정되었고 여러 지자체에서도 조례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활발히 진행중이다.
도봉구에서도 지난 달, 장애인자립생활지원조례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있었다. 토론회는 장애 당사자분들이 직접 기획하고 준비해서 마련한 자리라 더 의미있었다.
그 자리에서 현재 만들어져 있는 장애인자립생활지원 조례라는 것이 거의 대부분 실질적이지 못하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구체적 내용은 빠져 있고 문장은 선언적으로 되어 있어, 시행해도 안 해도 그만인 의미 없는 조례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실 조례제정운동의 핵심은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 집행부나 특정의원의 실적용으로 만들어지는 조례가 아닌 장애당사자의 욕구가 반영되고 지역사회의 합의를 거치는 과정을 통해 장애인당사자의 주도 아래 장애인당사자, 행정, 시민사회단체, 전문가 그룹의 고른 참여 속에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장애인당사자들에게 자립생활이 진정으로 보장되는 실질적인 조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실질적인 조례의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은 항목이 검토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첫째, 조례의 목적은 반드시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이 가능할 수 있도록 중증장애인의 지역사회 참여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평균적인 삶의 영위를 위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이라는 정도의 항목을 살려야 한다.
둘째, 자립생활실태조사 정기적 실시를 해야한다. 즉 기초자치단체의 구청장은 장애인의 복지증진과 자립생활을 위해 장애인 자립생활 실태를 3년 또는 4년마다 조사하여야 한다. 그리고 장애인자립생활실태조사에 근거하여 장애인자립생활지원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대한 선험적 지원행정이 아니라 체계적인 지원행정체계를 만들기 위한 기본 토대로서의 실태조사는 반드시 정례화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개인별 추가 제공을 해야한다. 구청장은 장애인복지법 제55조 및 동법 시행령 제35조에 따라 장애 정도나 그 밖의 사유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예산의 범위에서 활동보조서비스를 추가 제공하여야 한다.
넷째, 시설퇴소자의 우선지원을 규정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뿌리내리기 위한 지원시스템을 시설 퇴소자에게 우선 적용하는 규정은 기존의 조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매우 혁신적인 것이다. 단기적인 체험홈 프로그램이나 장기적인 체험홈을 동시에 확보하여 시설퇴소자의 지역사회 생활을 지원하여야 한다.
다섯째, 주거서비스를 독립된 장으로 구성해야 한다. 기존 조례는 명목적인 조항 하나에 그치고 있는데 반해, 주거서비스를 독립된 장으로 처리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 특히 중증장애인 공동주택 및 임대주택 분양․입주 지원, 체험홈 제공 및 지원을 규정하여 탈 시설과 지역사회 삶이라는 자립생활운동의 대의에 충실히 조응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여섯째, ‘자립생활발전지원기금’ 조항을 집어넣을 필요가 있다. 이 조항은 대표적인 구청장의 ‘의지의 문제’로 볼 수 있다. 모든 지자체가 자립생활 지원을 머뭇거리며 보여주는 못된 관성이 하나 있는데 다름 아닌 '재정의 문제‘로 귀결시켜버리는 노련한 기술이다. ’예산의 문제‘라는 틀에 박힌 변명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기금 조성이 시급하다.
일곱째, 신규임용 공무원(현직 지방공무원) 또는 선출직 공무원 및 공공기관에 대한 활동보조서비스 24시간 이수 정례화 및 ‘인권교육’ 실시 의무화를 권하고 싶다. 행정과 현장성을 결합할 수 있기 때문에 탁상행정의 악습을 개선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야 활동보조서비스의 ‘구비 추가지원’을 앞당길 수 있다. 또한 ‘인권교육’의 강제는 공무원의 ‘장애감수성’을 높일 수 있다.
여덟째, 자립생활센터의 운영적 측면에서 ‘장애인 당사자’ 원칙, 즉 장애인당사자의 지도부 구성(주도권)을 확실하게 규정해야만 한다. 자립생활센터 운영 관련 조항은 센터의 주도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단체 성격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규정이다. 그런데 서울시 기초단체 자립조례들의 센터 운영 규정들은 조례마다 각양각색이어서 아주 혼란스럽다. 운영위원회에 공무원이나 구의원의 참여를 보장하는 조례가 있는가 하면, ‘센터의 장이나 운영위원장이 비장애인이어도 가능하다’거나 ‘장애인을 우선한다’ 등은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다. 설상가상으로 소장과 운영위원들을 구청장이 임명하도록 한 조례도 있다. 이과 같은 독소조항이 현실로 다가온다면, 그 센터는 더 이상 독립된 조직도 아니고 장애인 당사자 조직도 아니다. 그저 사이비 자립생활센터일 뿐이다. 당연히 자립생활센터라고 칭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자치구 ‘자립생활지원위원회’ 설치이다. 위원회 구성 시 장애인당사자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장애인당사자의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욕구와 필요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장애인당사자 과반수 참여가 절대적이다. 사회복지시설장이나 특정 장애유형의 장애인단체장은 배제하고 말이다. 위원회는 자립생활 발전의 중장기 계획의 얼개를 짜고, 위원회 구성 및 운영방향 등에 대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장애인당사자 과반 이상의 위원회 구성 및 실질적인 활동 방안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기존의 각종 위원회는 당사자 계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데 게을렀다. 위원회의 난립은 경계해야 하지만 필요한 위원회의 의견 수렴과 결정 논의에 당사자의 참여 통로는 조례에서 강제해야 한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은 단순명료하다. 장애인당사자들이 시설이나 골방에 살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서비스 대상화를 넘어서서 지역사회 삶의 진정한 주체로 서고자 하는 것이다. 자립생활이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진정으로 보장되는 실질적인 조례의 탄생이 이제 나올 때다.
장애인이 '더부살이'하는 도봉구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도봉구를 위해, 또한 장애 당사자분들께 실질적인 도움과 필요가 있는 조례제정을 위해 차근차근 함께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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