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자 |
김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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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2 ― 반동적인, 너무나도 반동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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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cafe.daum.net/charmbiit
'북한을 가다' ― '평양의 미국인' ― '서해로 흐른다' (2)
#풍경2 ― 반동적인, 너무나도 반동적인
<풍경1>에서 다룬 뉴욕필의 평양공연을 두고 당시 국내 언론은
“‘미국적인, 너무나도 미국적인’ 부르주아 시대의 개막곡이 평양에 울려 퍼졌다”느니,
“은둔의 왕국이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세계의 일원으로 합류했다”느니 하는 호들갑과 함께 대대적으로 보도했음은 물론이다.
뉴욕필이 지구상 몇 되지 않는 금단의 동토에서 연주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이야 경천동지할 빅뉴스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쩌면 10.4선언과 같은 정치적인, 따라서 이성적 여과과정을 거칠 수 있는 담론과 대화보다
정서와 감수성에 직각적(直覺的)으로, 감성적으로 파고드는 음악과의 접촉이 더 파괴적이고 가공할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폐쇄적인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세력에게는 코카콜라와 음악이 핵폭탄보다 더 무서워해야 하는 물건이라지 않던가 말이다.
사실 나는 연주보다 관객들의 표정이 더 궁금했다.
처음 양국의 국가가 끝나고 <신세계교향곡>을 연주할 때까지만도 늘 봐왔던 표정없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마지막 커튼 콜(앵콜)로 북한 작곡가가 편곡한 <아리랑>을 연주할 때는 거짓말인양 그들의 표정이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들릴듯말듯 아리랑의 선율을 흥얼흥얼 따라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주가 끝나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두들 일어서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무대 뒤에서 기자를 만난 한국계 비올라 주자는 관객들의 열광적인 기립박수에 감동한듯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마치 친한 친구랑 헤어지기 싫은데도 잘 가라는 인사를 하는 것 같았어요.”
늘 태엽을 감아놓은 자동인형처럼 여겨졌던 그들에게서 그런 자발적인 반응은 처음 보는, 그래서 퍽 생경한 모습이었다.
여하튼 이 공연은 중앙방송의 전파를 타고 북한 전역에 생중계되었으며,
‘친절한’ 북한 당국은 이례적으로 학교와 직장의 근무시간까지 단축해가면서 북의 주민들이 시청하도록 배려했다 한다.
2008년 2월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평양공연 실황 장면
내가 알고 있던 인민공화국답지 않은 그 대담한 행보의 의도가 자못 궁금했다.
인민들의 정서를 파고들어 동요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의 발로일까.
음악은 음악일 뿐이라는 탈정치적인 스탠스를 고려한다 해도,
‘미국적인, 너무나도 미국적인’ 부르주아 음악이 평양 한 복판에서 울려퍼지는 것 자체가 그들로서는 ‘반동적인, 너무나도 반동적인’ 사건 아닐텐가.
반동이되 유쾌한 반동인 건 분명하지만, 그 속내를 가늠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북한이 200명이 넘은 단원들과 방송인들을 받아들인 게 놀라웠다.
하긴 북핵과 6자회담의 교착으로 벼랑 끝에 몰린 북한으로서는 뭔가 획기적인 카드를 내밀어야할 필요성을 절감했을 수 있다.
체제의 안정을 대외에 과시해야 할 절박함도 한몫했을 터였다.
미국도 60년 간 공고히 버텨온 북의 체제가 쌓아올린 비밀스런 코드를 음악을 통해 감성적으로 디코딩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가 될 터였다.
양측 모두 손해 볼 장사가 아니라는 정치적인 셈법이 바탕에 깔린 것이긴 했겠지만,
70년대 중국과 미국의 핑퐁외교에 버금가는 역사적인 첫 걸음으로 평가할 만한 일인 건 분명했다.
이를 두고 ‘싱송외교’(sing-song)라 부른 것도 그런 연유 때문이었으리라.
몇 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북한을 이탈한 한 사람이 북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모스크바에 유학하여 명문 차이콥스키음악원까지 거친 수준급 연주자라 했다.
부모형제를 사지로 몰아넣어도 좋다는 모진 결기가 없고서야 단행하기 어려울 일생일대의 대모험이 탈북일진대
그 동기가 뜻밖에도 해학적이었다.
굶주림이나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리샤르 클라이데르망인가 하는 대중연주자를 통해 널리 알려진
<가을의 속삭임>을 연주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 탈북을 결행한 동기였다지 않나.
그것도 당과 인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에 둔 여인에게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했다.
<가을의 속삭임>은 내가 20대 초반 입대하여 전방의 사령부에서 건너편에 똬리를 튼 인민의 군대와 총구를 겨누던 그 시절 처음 접한 곡이다.
휴가 나온 길에 누군가 건네준 테이프에 <아들린느를 위한 발라드>와 함께 이 곡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당시 흔했던 소니 워크맨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속삭임’은 애절함이 절절히 흐르는, 호소력 있고 감미로우나 본질적으로 대타적 의식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대중음악의 총아인 건 분명했다.
내가 학창시절 읽은 사회주의 문예이론의 강령과 도그마에 비추면 분명 ‘반동적인’ 감싼 감정의 발로였다.
그러나 그 어떤 이념도 강령도 감정의 촉수를 건드리며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울림에 대한 자발적인 감응을 가로막을 수는 없는 일.
사물의 촉발에 대한 자발적 반응마저 가로막히는 그 절망이 굶주림이나 정치적인 이념보다 더 견딜 수 없는 동기일 수 있을 게다.
최근, 북한에서 현지 촬영한 3편의 다큐물들을 접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NGC)에서 방영한 <평양의 미국인>과 <디에고의 밀착취재 - 북한을 가다>,
그리고 지난 10월 중순 안성시립도서관에서 상영한 <서해로 흐른다>가 그것이다.
<평양의 미국인>은 MBC가 미국의 ABC를 비롯해 독일과 프랑스의 방송사와 공동 제작한 프로그램으로, 당시 MBC에서도 방영했다 한다.
중앙도서관에서 방영한 <서해로 흐른다>는 무엇보다도 감질났다.
뭔가 좀 더 들여다보고 싶은데,
서로 훌훌 벗어던지고 맞부딪치고 싶은데,
그 꾸미지 않은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은데,
끝내 가닿지 못하는 애절함이었다.
연출과 통제라는 두터운 옷을 벗은 그들의 진면목을 온 몸으로 온 영혼으로 맞닥뜨리고 싶었다.
회당에 모여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에 대한 단호한 의지와 결연한 표정으로 ‘장군님’을 연호하는 화면 속의 그들이 아니라,
마루에서 안방에서 화장실에서 뒤뜰에서 책상머리에서 번민하고 고뇌하고 갈등하는 그들의 나직한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런 갈증이 차오를 때마다 페이드아웃되는 화면들...
개인 자격인 제작진이 안을 수밖에 없는 섭외의 제약이나 접근의 통제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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